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탈리아 왕국(신성 로마 제국) (문단 편집) === 위그의 재위 === 얼마 되지 않아 이탈리아 귀족들은 루돌프 2세에게 등을 돌렸고, 프로방스(저지 부르군트)의 섭정으로 있던 아를 백작 위그가 이탈리아를 통치해주기 바랐다. 926년 루돌프 2세의 장인인 슈바벤 공작 부르하르트 2세가 루돌프 2세를 지원하려고 갔으나, 그는 노바라 근처에서 밀라노 대주교 람베르토[* 이탈리아 국왕 람베르토와는 동명이인이다.]의 심복에게 죽임을 당한다. 루돌프 2세는 자기 신변을 지키려 고지 부르군트로 돌아가고, 같은 해 위그는 이탈리아 국왕으로 즉위한다. 프로방스 국왕 루이 3세가 죽자 위그는 프로방스의 정통 국왕이 되려고 서프랑크 국왕 [[라울(서프랑크)|라울]]과 베르망두아 백작 헤르베르트 2세와 동맹을 맺지만, 이미 프로방스는 루이 3세의 아들 샤를 콩스탕틴이 실권을 잡고 있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때문에 위그는 이탈리아의 통치에만 집중하게 된다. 위그는 자기 아들 로타리오 2세를 차기 왕으로 지목한다. [[파일:Italy_Lothar_II.svg.png]] 932년 위그는 자기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옛 부인을 버리고 다시 결혼하려 했으나, 문제가 생겼다. 새 신부가 창부정치로 유명한 [[로마]] 귀족 [[마로치아]]였다. 마로치아의 전 남편 중에 위그의 이부형제가 있어 가톨릭 교회법상 위그와 마로치아는 인척으로 돼버려서 결혼이 금지되었다. 위그는 포기하지 않고 인척 관계를 지워버리기 위해 자기 [[이부형제]]들을 제거하려 했다. 노력 끝에 위그는 마로치아와 결혼할 수 있게 되지만 이번에는 마로치아가 초혼하고 낳은 아들인 알베리코 2세가 로마의 폭도들을 선동해 새아버지 위그에게 쿠데타를 일으키고 로마를 점거한다. 위그는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마로치아는 투옥되어 937년 옥사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위그는 외교 문제에 집중한다. 933년 위그는 고지 부르군트의 루돌프 2세에게 프로방스(저지 부르군트)를 양도한다. 이로써 고지와 저지 부르군트가 통일되고 아를 왕국이 세워진다. 대신 루돌프 2세는 자신의 이탈리아 왕위를 포기한다. 그리고 루돌프 2세는 딸 아델라이데를 위그의 아들 로타리오 2세에게 시집보낸다. 또 위그는 로마를 점거한 알베리코 2세와 타협하고, 알베리코 2세는 위그의 딸과 결혼하기까지 한다. 위그는 자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되는대로 관직이나 토지를 갖다주는 등 온갖 특혜를 주었는데, 이탈리아 귀족들의 눈에는 이것이 아니꼽게 보였다. 이브레아의 베렝가리오는 이탈리아의 귀족들을 등에 업고 자기 처삼촌 위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이탈리아에서 추방당한다. 이브레아의 베렝가리오는 [[독일 왕국]]으로 피신하여 [[오토 1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봉신이 된다. 945년 이브레아의 베렝가리오는 오토 1세로부터 군대를 얻어 다시 이탈리아로 복귀하여 위그와 전투를 벌여 승리하고 위그를 아를 왕국으로 추방한다. [[파일:Carolingian_empire_947.svg.png]] 위그는 947년 죽을 때까지 명목상으로 이탈리아 국왕 작위를 갖고 있었고, 그의 아들 로타리오 2세도 명목상 이탈리아의 국왕이었지만, 실권은 이브레아의 베렝가리오에게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